동백 한국인Güney Kore
6 May 2021

(명나라 환관 겸 사신) 황엄 등이 의정부(국가 최고 행정기관)와 더불어 경복궁에서 전국의 처녀를 함께 선발하였다. 황엄이 처녀들 중에 미인이 없다고 노하여, 경상도로 왕이 파견한 환관 박유를 잡아다 결박하고 취조하였다......곤장을 치려다 그만두고, 교의(임금이나 3품 이상의 고위 관리가 앉는 의자)에 걸터앉아 정승을 앞에 세우고 욕을 보이고 나서 태평관(사신의 숙소)으로 돌아갔다. 


진헌색(중국에 보낼 진상품을 마련하기 위한 임시 관청)을 설치하여 계집아이를 모으고, 전국의 시집장가를 금지하였다......경차관(특수 임무를 주어 지방에 파견한 관리)을 각각의 도에 나눠 보내서 처녀를 뽑게 하였다. 공공 및 민간의 천민과 노예는 제외하고, 좋은 집안의 13세 이상 25세 이하 처녀를 모두 고르게 하였다......조금 뒤에 또 임금이 환관을 전국에 보내서 처녀를 간택하니, 전국의 민심이 흉흉하게 동요하여 몰래 혼인을 맺는 자가 매우 많았다. 


임금이 황제에게 보낼 처녀를 직접 간택하였다. (세종실록 8년 12월 9일)


사신과 처녀가 (경복궁의 동쪽 문) 건춘문에서 길을 떠나니, 그들의 부모와 친척들이 거리를 막고 울면서 보냈으며, 구경하는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세종실록 9년 7월 20일)


“그의 언니 한씨가 영락제의 후궁이 되었다가 순장당한 것만도 애석한 일인데, 이제 또 (동생마저) 가는구나.”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으며, 그때 사람들이 그를 산송장이라 하였다. (세종실록 10년 10월 4일)


황제가 죽자 순장된 궁인이 30여 명이었다. (조선 여자) 한씨가 최씨와 함께 죽었다. (세종실록 6년 10월 17일)


"내가 사대의 예를 함이 지나치다고들 말한다는데, 최근 중국이 매년 사신을 보내 상을 내려줄 정도로 특별히 융숭하게 대우하는 일이 일찍이 없었다"(세종실록 10년 윤4월 18일)


"약자에게 자행한 정치폭력, 정당화될 수 없어~"...


세종 공녀 조공 역사는 일제강점기, 미군 주둔 시의 ‘양공주’로 재현됩니다.

[오마이뉴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274212?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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